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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 이천시 농업진흥과 박종인 인력육성팀장



전래동화 <사윗감 찾는 두더지>의 내용이다. 껌껌한 굴속의 두더지 딸이 자라서 시집갈 때가 되자 마을의 총각 두더지들이 그 예쁜 딸과 결혼하고 싶어서 집 앞에 줄을 섰다. 하지만 두더지 부부는 딸에게 어울리는 사윗감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천하장사여야 한다고 생각하여 사윗감을 찾기 위해 굴 밖 세상으로 나섰다.


눈부신 해님을 본 두더지는 해님이 세상에서 힘이 제일 세다고 생각했는데, 검은 먹구름이 다가오더니 해를 가리자 해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두더지는 구름에게 사위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려는데 바람이 쌩 하고 불어오자 구름은 밀려나고 말았다. 두더지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건 바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끄떡하지 않은 돌부처를 만난 후에는 돌부처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고 생각하고 돌부처에게 사위가 되어달라고 간청했다.


 뼈대 있는 집안에는 족보가 있다. 족보는 그 집안의 역사다. 족보에는 선조들의 계보가 적혀있으므로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집안의 뿌리를 알 수 있다. 성경을 통해 예수계보를 알 수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조선시대 왕의 계보를 알 수 있다.


역사는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이다. 역사를 단지 지난날의 어떤 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역시 오늘날 벌어지는 일들의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므로 역사를 아는 것은 지나간 사건을 단순히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상황들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역사는 인류문화의 발전과정인데, 인류는 역사가 기록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역사에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 있다. 7만 년 전의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으며, 1만2천 년 전의 농업혁명은 역사의 발전을 부추겼으며, 500년 전의 과학혁명은 역사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인류는 인지혁명 이후에도 어느 동물처럼 자연 식물의 씨앗과 열매를 채집하였지만, 농업혁명 이후부터는 작물을 직접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 농업의 시작은 씨앗이 떨어지지 않고 고대로 이삭에 붙어 있는 야생밀을 발견하면서부터다. 바로 외알밀과 에머밀인데, 지금도 시리아와 터키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일반 식물은 여물면 씨앗을 멀리 퍼뜨리기 위해 민들레 씨앗처럼 바람에 날아가거나, 제비꽃 씨앗처럼 자체 탄력에 의해 멀리 흩어지므로 거두기가 어렵다. 그러나 그중에 몇몇 종은 다 여물어도 줄기에 붙어있었는데 이것을 인간이 거둬서 작물로 재배할 수 있었다.


농사가 야생밀에서 시작되었듯이 벼농사도 야생벼에서 시작되었다. 동남아시아 습지에서 자라는 야생벼인 오리자 루피포곤(Oryza rufipogon)은 인도와 중국 남부에서는 3,000년 전부터 재배하였고, 아직도 동남아의 일부 부족들은 이 벼를 채집하여 식량으로 이용하고 있다. 루피포곤은 다년생으로 포기나누기와 종자번식을 하며, 벼 낟알에는 긴 까락이 있으며 탈립성이 강해서 벼 낟알이 이삭에서 잘 떨어진다. 현재 재배되는 벼는 오리자 사티바(Oryza sativa)와 오리자 그라베리마(Oryza glaberrima)가 있는데, 대부분의 벼는 아시아벼인 오리자 사티바다. 오리자 그라베리마는 서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되고 있으며, 벼이삭이 곧추 서고 낟알엔 털이 적고 까락이 없다. 잎혀가 작으며 현미는 적자색이다. 찰벼는 없고 모두 메벼다.
     
생물학적으로 종이란 암수가 성적인 관계를 통해 같은 유전자 구성을 가진 자손을 낳을 수 있는 개체군을 말한다. 인류는 생물분류상 호모 사피엔스 한 종뿐이지만 민족, 언어, 지역, 형태 등의 기준에 따라서 여러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가령 민족을 기준으로 몽골족, 게르만족, 이누이트족 등으로 나눈다. 벼도 인류와 비슷하게 거의 한 종만이 남았는데, 오리자 사티바다. 사티바는 찰기 없는 메벼와 찰기 있는 찰벼가 있으며, 논에서 재배하는 수도(水稻)와 밭에서 재배하는 육도(陸稻)가 있다. 인류를 피부색에 따라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으로 나누듯이, 벼도 형태 및 생태에 따라 자포니카(일본형벼), 인디카(인도형벼), 자바니카(자바형벼)로 나눈다.


자포니카는 한국, 일본, 중국 동북부 등 온대지역에서 재배되는데, 키가 작으며 포기를 많이 번다. 쌀알은 짧으면서 둥글고 두꺼우며, 밥을 지으면 차지다. 인디카는 인도와 동남아시아의 온대 남부와 열대지역에서 재배되는데, 키가 크고 포기를 많이 번다. 쌀알은 길고 가늘며, 밥을 지으면 차지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재배하는 벼는 자포니카 벼지만 세계적으로는 인디카 벼를 가장 많이 재배한다.    


벼의 기원지는 어디일까? 벼 기원에 대해서는 인도 기원설, 동남아 기원설, 중국 기원설 등이 있다. 인도기원설은 Candoll이 <재배식물의 기원>(1883)에서 벼는 열대 인도가 원산이라고 처음 지적하였다. 하지만 벼의 기원지는 한 지역이라기보다는 인도의 아삼지역과 중국의 운남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으로 보는 편이 일반적이다. 아삼-버마-운남을 연결하는 고원지대는 표고가 1,500~2,000m로 북위 28° 정도라서 기후가 온난하고 물 사정이 양호하여 고지대에는 자포니카 벼가, 저지대에는 인디카 벼가 재배된다. 이곳에는 다양한 야생벼가 분포하고 있으며 벼의 종류와 품종이 다양하여 유전적 변이가 커서 유전변이의 중심이라고 인정되고 있다.


그럼 한반도에서의 벼 재배는 언제부터일까?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인데, 학자에 따라 기원전 5세기에서 20세기까지 보기도 한다. 1991년에 경기도 김포에서 기원전 2,100년경으로 추정되는 볍씨가 발견되었고, 1991년에는 경기도 고양에서 기원전 2,300년경의 볍씨가 발견되었다. 그러던 중 1998년에 충북 청주시 소로리에서 1만 3000년 전의 볍씨가 출토되었다. 가장 오래된 볍씨로 알려진 것보다 무려 3천 년이나 이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청주 소로리볍씨'는 오창 과학산단 조성과 관련해 발굴조사를 할 때 발굴된 129톨의 볍씨 중 일부를 서울대를 비롯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및 지오크론 연구소 등 전문연구기관에서 연대측정한 결과 대략 1만 5천 년 전으로 판명됐다. 이 분석을 토대로 국제 고고학 개론서인 <현대 고고학의 이해(Archaeology)>는 최근 개정판에서 쌀의 기원지를 한국으로 개정하여 출간하였다. <현대고고학의 이해>는 4년마다 개정판을 내는데, 이전까지는 중국 후난성에서 출토된 기원전 9,000년쯤의 벼를 쌀의 기원이라고 적었는데, 최신 개정판인 2016년판에는 쌀의 기원지를 한국이라고 하고 그 연대를 기원전 1만3천년 전으로 바꿨다.  


다시 전래동화 <사윗감 찾는 두더지>의 내용을 살펴보자. 세상에서 가장 힘센 천하장사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 두더지는 해님, 구름, 바람을 만나고 이윽고 돌부처를 만났다.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끄떡없는 돌부처에게 사윗감이 되어달라고 말하려는 순간 돌부처가 덜덜 떨었다. 그 까닭은 돌부처 밑에서 두더지 총각이 흙을 파는 바람에 그 육중하던 돌부처가 흔들렸던 것이었다. 두더지 말고 힘센 존재를 찾아 나선 두더지 부부는 결국 두더지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는 한국에서 재배하는 벼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중국, 아시아, 인도 등을 살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가 한국에서 나왔고, 벼의 원산지가 한국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이것도 여러 학설 중에 하나이긴 하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매우 흥겹고 흥미롭다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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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2-17 12: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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